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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 기독교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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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미디어와 문화

07/20/2019

[Translated by Haeng-Bum Kim (김행범)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Korea]

보수적 지식인 운동은 존재론적 위기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서서히 들끓어오다 First Things 지(역주: 미국의 보수적 가톨릭의 입장을 대변하는 저널)가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의 편집인인 소흐라브 아흐마리(Sohrab Ahmari)가 그가 “프렌치주의”(Frenchism)이라 부른 것이 실패했음을 공격한 글1을 게재한 후에 확연히 드러났다.2 프렌치주의란 아흐마리에 의하면 다원주의적인 우리의 정치적 적들을 비록 의견이 다를지라도 존엄과 존경으로 다루는 자유로운 사회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아흐마리는 기독교도들은 자유주의를 포기하고 국가를 사용하여 기독교의 적들을 분쇄하고 그들에게 “우리의 질서와 우리의 정통성을 강행”(enforce our order and our orthodoxy)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형세들을 둘러보면 기독교 우파들 및 자유주의자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그 결과 자유주의에 어긋나는 아흐마리와 같은 사람들의 의도에 적어도 공감을 느끼기 쉽다. 좌파의 흑암이 처 들어오는 것에 절망한 사람들에게는 아흐마리의 방식이 남은 유일한 선택지라고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작가이자 언어학자인 톨킨(J.R,R Tolkien)이라면 우리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아흐마리와 톨킨의 비교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사실, 톨킨은 상상력이 대단하고 탁월한 판타지 작가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또한 견고한 가톨릭적 사고에 기울어진 기독교 사상가이기도 한데 그것은 아흐마리 자신도 표방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통선(common good)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아주 다르다. 공통선이란 아흐마리 자신이 현시하는 것으로만 표명된다고 보는 아흐마리와는 달리, 톨킨은 분명한 다원주의적 메시지로 자신의 작품을 그렸다. 잘 알려진 『반지의 제왕』(LOTR: The Lord of Rings) 3부작 및 『파머 자일즈 오브 햄』(Farmer Giles of Ham)과 같은 그보다 덜 알려진 작품들조차 다양성이 필요함과 각 집단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자유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톨킨의 허구 속 세계에서처럼 현실의 삶에서는 이러한 분권화(decentralization)가 결코 완벽한 사회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대안인, 아흐마리가 제안한 국가에 의한 중앙집권화(centralization)는 결함있는 인간들이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권력의 양이 커짐에 따라 결과를 더 나쁘게 만든다.

최근 2017년 가을까지 아흐마리는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그는 그가 공통선이라 여기는 것과 합치하도록 명령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믿고서 톨킨의 『절대 반지』(One Ring of Power)를 추구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은 이 같은 호전적 신념과 정면으로 맞선다. 사실, 마법사인 ‘백색의 사루만’(Saruman the White)은 선한 인물로 출발했지만 점차 권력과 통제력을 추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악의 무리로 타락했었다. 나중에 그가 흑암의 세력과 동맹을 맺는 것에 간달프(Gandalf)를 끌어들이고자 회유할 때 그는 적나라한 권력 장악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가 임박했나니 곧 인간의 세상이라, 우리가 그 인간들을 다스려야 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을 가져야 해, 우리가 의도하는 대로 모든 것을 명령하는 권력 말이다. 오직 지혜를 가진 자들만이 알 수 있는 그 선(善)을 위해서.”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오늘날의 사루만들(Sarumans)들에겐 인간들이란 스스로 행동하도록 놔둘 수 없는 존재들이다. 분명 아흐마리는 인간들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강력한 손이 필요하며 이에 찬성 않는 귀찮은 좌파들은 분쇄되어야 한다고 지금 믿고 있는 것이다. 걱정스럽게도 점차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급여일의 대출(payday lending) 금지3, 이자율 상한지정(capping interest rate) 및 청교도 법(blue laws)들을 재시행하는 것이 깊고도 공개적인 지지를 받는 것을 보게 된다. 다 공통선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아주 기이하게도, 아흐마리 진영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잘 대해주는 것이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일요일 날에 장사를 규제하는 청교도 법률들을 다시 시행하는 것이 교회 출석을 높이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최근 논문에 대한 대응으로 아흐마리는 내가 일요일 날 일하는 사람들을 “농사꾼들”(peasants)로 멸시한다고 트위터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일상의 사람들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갈 능력이 없는 하층민(plebeian)으로 보고 있는 것은 오히려 아흐마리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자신의 비전과 가치를 그들에게 부과하기 위해 국가의 권력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나?

우린 그 및 그의 부류들이 어떤 식으로든 권력을 부여받는다면 그들이 지금 존중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한 바로 그 사람들에게 자치의 존엄함을 허락할지를 확신할 수 없다. 참으로, 그것은 사루만 및 그의 졸개들이 샤이어(Shire)를 장악하고 자신들이 정한 “선”(the good)이란 개념을 강요하고자 호빗들(hobbits)을 다루었던 방식과 끔찍스러울 정도로 닮아 있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톨킨과 아흐마리의 상이한 시각은 이 지상에서의 선악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 의견불일치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톨킨으로서는 모든 악은 영원히 정복될 수 없다고 믿었다 - 적어도 이 지상에서는 말이다. 그가 보기에는 참으로 악에 대한 싸움은 긴 패배였을 뿐이다. 즉 죄로 타락하고 오염된 세상에서는 악에게 패해 물러나는 후퇴의 여정(rear-guard)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반지의 제왕』은 위대한 선(善)의 권력들은 단지 그 이전의 영광의 그림자로만 남아 있는, 곧 붕괴 이후의 세계 속에 서 있다. 아, 심지어 선이 승리한 경우에도 악은 항상 침공해 오고 있다. 사실, 만년에 톨킨은 『반지의 제왕』의 후속편으로 『새로운 그림자』(The New Shadow)란 작품을 시작했는데 그 속에서 악 및 부패의 세력은 다시금 소동을 일으킨다.

톨킨의 신화는 악은 결국 세상을 정복할 것이며 그 뒤에 그것이 전복되고 새 땅이 창조되어 죄와 악의 권세가 없어지는 싸움이 있을 것이라는 기독교 신앙을 반영한다. 바로 이 때문에 톨킨은 ‘능력의 반지’(Ring of Power)를 사용하는 것이 소용이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무한한 권력은 세상의 악을 더 키울 뿐이기 때문에.

아흐마리는, 그가 의도했었던 아니었던 간에, 인간의 힘만으로 기독교도들에게 어떤 형태의 일시적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신앙을 보여준다. 그가 보기에는 이 타락된 세상에서 선(善)이 이룩될 수 있고 이에 대해 어떤 타협도 필요 없다. 그러나 프렌치주의(Frenchism)에 대한 아흐마리의 비난은 아몬 헨(Amon Hen)의 비탈 위 보로미르(Boromir)가 만약 ‘능력의 반지’(Ring of Power)를 얻는다면 사람들을 끌고 모르도르(Mordor)를 쳐부수러 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에 상응하는, 미혹된 권력의 여정에 비견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로미르(Boromir)와는 달리, 아흐마리는 인간들의 강한 왕자조차도 아니다.4 그는 타블로이드 신문의 편집인일 뿐.

간달프(Ganfalf)냐, 사루만(Saruman)이냐? 보로미르(Boromir)냐, 파라미르(Faramir)? 데네토르(Denethor)냐, 테오덴(Theoden)이냐? 당신은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톨킨은 이것이 옳은 것(what is right)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부닥칠 선택임을 알았었다.

아흐마리는 기독교도들이 그 적들에 맞서 능력의 반지를 사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것이 자신들 및 타인들에게 가져오는 위험에는 유의하지 않았다. 아마 아흐마리는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기독교도들의 도덕적 의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런 행동들은 실제로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 온다. 기독교도들은 선(善)을 위해 ‘능력의 반지’를 휘둘러보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반드시 악을 가져 온다.


글쓴이) Zachary Yost

재커리 요스트는 피츠버그 출신의 젊은 정치학도로 Mises University 출신이다. The American Conservative, The Washington Examiner, The Federalist 등에 기고를 해온 보수정치 이론가이다.


옮긴이) 김행범 (부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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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s://www.firstthings.com/web-exclusives/2019/05/against-david-french-ism
  • 2. (역주) 소흐라브 아흐마리 Sohrab Ahmari와 데이비드 프렌치 David French는 둘 다 보수기독교의 입장을 지닌 자유이론가이다. 둘의 차이는 자유주의의 적에 대해 싸우는 ‘방식’ 때문에 나타난다. 전자는 자유의 적인 사회주의 이념 진영이 이미 폭력과 무질서로 공격해 오는 이상, 자유주의 진영이 관용과 점잖은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그런 방식이 초래할 위험을 감안하여 관용과 nice한 대응을 여전히 견지할 것을 주장한다. 이 둘의 차이에 관한 자세한 이해를 위해서는 https://qz.com/1645163/conservatives-led-by-david-french-and-sohrab-ahmari-are-in-a-big-fight/ 참조하라.
  • 3. (역주) 급여일 대출이란 수일간의 초단기에 높은 이자율로 자금을 융통하는 것인데 차입자들이 이자 때문에 큰 피해를 보기 쉽다.
  • 4. (역주) 보로미르는 반지의 제왕 작품 속에서 군주의 아들로 나온다.

Zachary Yost is a Mises U alum and Young Voices Advo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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