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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에 대한 처방

Tags Poverty

01/05/2019Henry Hazlitt

[Translated by Hyuk Cheol Kwon (권혁철)

(이 글은 The Conquest of Poverty (1996) 제20장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 책의 주제는 빈곤의 “제거”가 아니라 빈곤의 정복이다. 빈곤은 완화되거나 축소될 수 있으며, 지난 2세기 동안 서구 세계에서는 거의 기적적으로 빈곤의 완화 및 축소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빈곤이란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며, 개인적 빈곤은 질병이나 죽음을 제거하는 것 이상으로 “제거”하기 어렵다.

개인 혹은 한 가정(family)의 빈곤은 “생계부양자”(breadwinner)가 돈을 벌 수 없으면 발생한다. 생계부양자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가정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없거나 벌지 못하면 빈곤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는 일시적이거나 혹은 영속적으로 자기 자신의 생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어린 아이들과 질병에 걸린 사람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또한 맹인이나 불구자, 정신박약 등 불행을 당해 영속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빈곤에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원인들이 있기에 그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

오늘날에는 빈곤 문제를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각 개인-또는 적어도 각 가정-이 자신들의 빈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만일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거나 책임지지 않는 가정들을 위한 잉여(surplus)가 존재하려면 압도적 다수의 가정들이 스스로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생산해야만 한다. 만일 다수의 가정들이 스스로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해서: 역자) 제공하지 못한다면-이런 사회에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스스로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을 제공하지 못한다-그 어떤 “적절한 구제 시스템”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압도적 다수의 가정들이 스스로의 빈곤 문제를 이미 해결(사실상 해결하는 것 약간 이상)하고 있어야만 비로소 “사회”가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18장에서 언급된 빈곤 구제의 역설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즉 공동체가 부유해질수록 구제의 필요성은 더 적어지만, (구제를 위해: 역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아진다; 반면에 공동체가 가난할수록 구제의 필요성은 더 커지지만, (구제를 위해: 역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더 적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자발적이거나 강제적이거나 관계없이 구제 혹은 소득 재분배는 결코 빈곤의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기껏해야 질병을 감추고 고통을 완화시킬 뿐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하는 임시변통에 불과하다는 점을 재차 지적하는 표현이다.

더구나 정부의 구제책은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을 더욱 연장시키고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 그 구제책은 끊임없이 과도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구제책이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을 때조차도 구제를 받는 사람들과 구제를 위해 지불을 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의 일하고 저축할 동기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 돕기”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취하는 모든 정책 수단들은 장기적으로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빈곤을 치유한다는 명분의 거의 모든 잘 알려진 정책들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누누이 지적해왔다. 나는 여기서 소득 보장,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최저임금법, 노동조합의 권력을 강화하는 법률들, 노동절약형 기계화에 대한 반대, 일자리 나누기 정책(promotion of "spread-the-work"), 특별 보조금, 점증하는 정부 지출, 점증하는 조세 부담, 가파르게 올라가는 누진적 소득세, 자본 이득과 상속 및 기업에 대한 징벌적 과세 및 노골적인 사회주의 정책과 같은 잘못된 처방들에 대해 분석을 했다.

이 밖에도 빈곤에 대한 잘못된 처방들은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잘못된 처방들 모두에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오류가 있다. 하나는 특정 집단에게 혜택을 주고자 의도된 조치의 즉각적인 효과만을 바라볼 뿐 의도했던 수혜자뿐 아니라 여타 다른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장기적이고 부차적인 효과를 간과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오류는 일정한 수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정한 양과 질을 가진 자본을 통해 생산되던 재화와 서비스의 양(量)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생산될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생산자, 근로자, 또는 소비자에게 인센티브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큰 관계없이 일정한 생산량이 거의 자동적으로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생산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으며”, 필요한 것은 오로지 공정한 “분배”라는 것이다.

실망스러운 것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대중적 이데올로기가 1백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아무런 진전이 없다-어쩌면 오히려 후퇴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중반의 영국 경제학자 나소 시니어(Nassau Senior)는 자신의 일지(journal)에 이렇게 쓰고 있다:

“문명이라는 기적을 일군 자본은 소수 (성공한: 역자) 경제와 기업들의 느리고 고통스런 창조의 결과이며, (다른: 역자) 자본가들의 이윤을 감소시키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혹은 근로자들의 역할을 감소시키는 등등의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파괴되거나 쫓겨나고 혹은 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기나긴 일련의 이성적 추론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가 게으름과 낭비를 지원하거나 위법행위에 대한 벌칙을 완화하며, 본질적으로 갖추어져 있던 절제와 보상에 대한 기대를 박탈함으로써 부(富)를 파괴할 수 있으며, 명백히 대부분의 경우 빈곤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기나긴 일련의 이성적 추론이 필요하다.”1

역사를 통틀어 인류는 빈곤 치유책을 모색해 왔으며, 치료제는 언제나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최소한 그 시책이 가능한 한 개인으로서의 행동에 적용되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럼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개인적인 치료제가 바로 노동과 저축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사회조직의 용어로 표현하면, 2세기 전까지의 우리 조상들에게는 그 대략적인 윤곽조차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누구에 의해서도 의도적으로 계획되지 않은 것의 결과로서의 노동 분업 시스템, 교환의 자유, 그리고 경제적 협력이 진화했다. 이 시스템을 존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비난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이것을 현재는 자유기업 시스템 혹은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바로 이 시스템이 인류를 대량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킨 시스템이다. 바로 이 시스템이 지난 100년, 지난 세대 및 지난 10년 간 세계의 모습을 가속적으로 변화시킨 시스템이며, 몇 세대 전에는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소유하거나 상상하지도 못했던 편의시설들을 일반 대중들에게 제공해 온 시스템이다.

개인적인 불행과 개인적인 취약점으로 인해 빈곤한 개인들 및 빈곤 지역들("pockets“ of poverty)이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날 보다 번영된 서구 국가들에서는 자본주의가 이들 가난한 사람들을 크게 감소시켜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도록 만들었으며, 만일 사회가 계속해서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원칙들을 고수한다면 빈곤문제를 헤쳐 나가기는 더욱 쉬워지고 그 중요성은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선진국들에서 자본주의는 18세기 중반 경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전 역사를 통틀어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 존재했던 대량 빈곤을 이미 정복했다. 만약 자본주의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작동하도록 허용된다면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더 많은 지역에서 그리고 더 큰 규모로 대량 빈곤을 몰아낼 것이다.

“사회주의는 왜 작동하지 않는가”라는 장(章)에서 나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기적을 일으키는지와 대비하면서 설명을 했다. 자본주의는 사회적으로 가장 긴요하게 요구되는 것들에 조응(照應)해서 수만 가지 다양한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들을 산출하며, 사유재산, 자유 시장, 그리고 화폐라는 제도들을 통해 -수요와 공급, 비용과 가격, 이윤과 손실을 통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경쟁도 물론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쟁은 현존하는 기술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생산 방법과 접목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더 효율적인 기술의 개발에 착수하도록 한다. 그것은 현재 생산되는 제품의 생산비용을 낮추고 품질을 개선하며,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생산이 된다면 소비자들은 어떤 재화를 소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생산자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거나 발견하도록 한다.

이러한 경쟁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본을 잃고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리고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은 생산을 더 확장하기 위한 추가 자본을 이윤을 통해 획득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빈번한 비판은 아마도 분배가 “불평등”(unequally)하게 이루어진다는 비판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불평등 분배: 역자)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중요한 미덕을 표현하고 있다. 비록 운(運)이라는 것도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벌칙은 오류와 태만(error and neglect)에 대체로 비례해서 주어지고, 보상은 노력과 능력, 그리고 예지력에 대체로 비례해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는 정확히 각자가 생산에 기여한 시장가치에 비례해서 받게 되는 보상과 벌칙 시스템이며, 우리들 각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생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고, 그럼으로써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전체 공동체의 생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하는 그런 시스템이다. 만약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어떤 사람이 능력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재주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근검절약하든 하지 않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생활 조건을 제공한다면, 또 만약 자본주의가 뛰어난 재주와 노력에 높은 가치(premium)를 부여하지 않고 또 나태함을 벌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오로지 평등한 궁핍만을 낳을 것이다.

시장경제와 분리될 수 없는 소득의 불평등이 가져오는 또 다른 효과는 동일한 액수의 사회적 총소득이 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을 경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저축과 투자에 투입해 왔다는 점이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일어났던 강력하고도 가속적인 경제적 진보는 부자들의 투자-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철도, 그리고 다수의 중공업 분야-에 의해 가능했었다. 사람들이 다른 이유를 들어 소득의 불평등에 대해 개탄할 수는 있겠지만, 소득의 불평등이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비해 총산출량과 우리 모두의 부를 훨씬 빠르게 증가시켜 왔다.

가난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돕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가난 구제 명분으로 데모나 폭동을 조직하느라 허송세월하지 말아야 한다. 즉각적인 소비에 사용할 수 있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은 결코 자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 벌어들인 소득으로 절제하고 살면서 저축하고, 그 저축한 돈을 기존의 건전한 기업이나 신생 기업에 꾸준히 투자한다면, 모든 사람이 풍요롭게 되고, 그리고 단순히 일자리의 양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우리 시대에서 일어났던 바로 그 기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된 속도로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고, 그러다보니 이런 기대를 갖도록 만들어주었던 바로 그 시스템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놀랍도록 근시안적인 조바심이 생겨났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런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적 진보의 진정한 원인에 대한 교육이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것 이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글쓴이) Henry Hazlitt

해즐릿은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뉴스위크 등에 경제 관련 글을 쓰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였다. 아마도 그는 고전이 된 <Economics in One Lesson>의 저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Hyuk Cheol Kwon is president of the Center for Korea-Germany Economic Research,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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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Nassau Senior, journal Kept in France and Italy from 1848–52, London: Henry S. King, 2nd ed. 1871, Vol. I, pp.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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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GettyImages/AndreyPopov/915448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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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e This Article

Hazlitt, Henry, "The Cure for Poverty," in The Conquest of Poverty (Irvington-on-Hudson, N.Y.: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 1996), chap. 20. Originally published by Arlington House, New Rochelle, N.Y., 1973. Reprinted and made available online by the Mises Institut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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