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es Institute
Published on Mises Institute (https://mises.org)


정치적 자본주의에 관한 홀콤의 견해

[Translated by Sooyoun Hwang (황수연)]

랜들 G. 홀콤(Randall G. Holcombe), ≪정치적 자본주의: 경제 및 정치 권력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방식(Political Capitalism: How Economic and Political Power is Made and Maintained)≫,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2018, X + 294페이지.

랜들 홀콤(Randall Holcombe)은 경제학자로서 공공선택론에 대한 자기의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인상적인 새 책에서, 그는 공공선택론을 “엘리트 이론(elite theory)”과 결합함으로써 공공선택론에 역사적 차원을 더한다. 이렇게 하는 데서, 그는 새로운 경제 체제,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가 시장 자본주의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논쟁적인 명제에 도달한다. 자기의 명제를 옹호하는 주장을 하는 데서, 홀콤은 경제학, 정치학, 그리고 사회학의 문헌에 관한 놀랄 만한 지식을 보인다.

“정치적 자본주의”라는 말로, 홀콤은 종종 “연고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불리는 것과 똑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그가 언급하듯이, 그 개념은 잘 확립되어 있는 개념이다. 상이한 정치적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도 미국 경제가 엘리트 재계와 정계의 동맹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점에 광범위한 의견 일치가 있다. 데이비드 스톡먼(David Stockman)과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보통 불화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스티글리츠는 주장한다, “‘우리는 높은 데 있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권력을 주는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그 권력을 재분배의 정도를 제한하는 데뿐만 아니라 게임의 규칙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형성하는 데도 사용해 왔다.’ 그런 견해들에 공감하여, 스톡먼은 말한다. . . ‘국가는 자유 시장을 괴롭힌다고 주장되는 불완전들을 작아 보이게 하는 고유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즉 공공선(public good)의 이름으로 착수되는 정책들은, 자원들을 사회의 공유 자원에서 자기들 자신의 사적 목적을 위해 전유하는, 특수 이해 관계자들과 연고 자본가들에 의해 무정하게 포획된다.”(p. 5) (홀콤이 인용하는 많은 저작들 외에도, 헌터 루이스(Hunter Lewis)의 탁월한 책, ≪미국에서의 연고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in America)≫도 이와 관련하여 언급할 가치가 있다.)

홀콤은 정치적 자본주의가 시장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와 다른 새로운 체제라고 주장한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 용어는 막스 베버(Max Weber)에서 유래하는데, 후자는 그것을 “고대 로마의 정치 및 경제 체제들을 서술하는” 데 사용했다(p. 8). 홀콤은 그 개념을 현대 미국에 적용한다. “뒤따르는 분석은 정치 및 경제 엘리트가 자기들 자신의 편익을 위해 체제를 통제하는 정치적 자본주의가 시장 자본주의가 아니며 별개의 경제 체제로서 분석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p. ix) 내가 검토하고 싶은 것은 이 명제이다.

그는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과 고든 털럭(Gordon Tullock)에 의한 정부에 관한 공공선택 분석을 확대함으로써 그것을 옹호하는 주장을 한다. 이 경제학자들은 자유 시장이 공공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고 그래서 정부 개입에 의해 보충될 필요가 있다는 표준적인 신고전학파 주장에, 비록 그들이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도전했다. 표준적인 견해에서는,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행위자들은, 공공재를 생산하는 데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여, “무임승차하는(free ride)”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그것의 과소 생산이다.

뷰캐넌과 털럭은, 비록 신고전학파 모형의 가정들에 도전하지 않고 그렇게 하긴 했지만, 표준적인 견해의 정책 결론들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통렬한 질문을 제기했다. 정책 결정자들이 시장 행위자들보다 자기 이익을 덜 추구한다고 왜 가정하는가? “정부는 전지(全知)하지 않다. 정책 결정자들은 자원들을 이론적으로 최적인 후생 극대치에 일치하도록 배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는 자비롭지 않다. 정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민간 부문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과 꼭 같이 자기들 자신의 이익을 지킨다. 공공 정책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유인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p. 14)

뷰캐넌과 털럭은 집단 착취의 이론들(theories of group exploitation)을 거부했지만, 홀콤은 동의하지 않는다. “뷰캐넌과 털럭은 ‘또한 지배 계급에 의한 피지배 계급의 착취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어떠한 집합체 이론이나 관념도 거부했다. 이것은 정체(政體)를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집단이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의지를 강요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구체화하는 마르크스주의 비전을 포함한다,’ 정치적 의사 결정을 분석하는 공공선택 접근법은, 뷰캐넌과 털럭이 그것을 이해하는 바로는, 이 장[과 책]의 주제인 집단 행동과 엘리트 이론들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pp. 64-65)

홀콤은 어떻게 개개 행위자들의 동기에 대한 뷰캐넌과 털럭의 강조를 거부하지 않고 집단 착취 이론들을 받아들이는가? 그 수수께끼에 대한 열쇠는 코스 정리(Coase theorem)에 있다. “거래 비용이 낮을 때, 사람들은 낮은 거래 비용 집단의 구성원들―교섭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자원들을 배분하도록 교섭할 수 있다. 거래 비용이 높을 때, 사람들은 자기들에 대한 가치를 극대화하게 자원들을 배분하도록 교섭할 수 없을 것이다. . . 낮은 거래 비용 집단에 있는 사람들은 공공 정책을 만들도록 서로 교섭한다. 높은 거래 비용 집단에 있는 사람들은 . . . 낮은 거래 비용 집단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설계된 정책들의 지배를 받는 처지가 된다. 낮은 거래 비용 집단에 있는 사람들은 엘리트(elite)이다. 높은 거래 비용 집단에 있는 사람들은 대중(masses)이다.”(p. 76)

거래 비용에서의 이러한 차이는 엘리트 이론이 필요로 하는 시간에 걸친 연속성을 허용한다. 차이가 지속되는 한, 엘리트 집단이나 계급에 의한 오래 지속되는 지배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국회에서 현직자들은, 정당과 상관없이, 종종 도전자들에 대항해 제휴한다. 그들을 내쫓는 어려움 때문에, 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정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유지하도록 공모하는데, 서로와 공유하는 것이 그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같은 정당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보다 더 많다. . . 정치적 경쟁의 더 중요한 차원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 대 그 권력을 얻으려는 그들의 도전자들 사이의 경쟁이지, 한 정당 대 다른 정당의 경쟁이 아니다. 이것은 정치적 자본주의에서 진실이지만, 또한 일반 정부에 대해서도 진실이다.”(p. 191)

홀콤은 지대 추구(rent-seeking)와 규제적 포획(regulatory capture)의 메커니즘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것들에 의해 정부에서 엘리트들은 대중들을 착취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연합을 지배하는 것이 정부 이익인지 기업 이익인지 말하는 것은 때때로 어렵다. 한 책략에서, 입법부는 일정 이해 관계자들에게 불리하게 영향을 미칠 법률들을 통과시키겠다고 위협하여, 입법부가 자기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해 당사자들이 “기부금(donations)”을 제공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정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입법 조치 혹은 비(非)조치와 교환으로 지불을 뜯어낼 유인을 가지고 있고 지불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용이 자기들에게 부과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지불할 유인을 가지고 있다.”(p. 129)

홀콤의 주장은 그것 자신의 용어들 안에서는 강력하지만, 그것은 머리 로스버드(Murray Rothbard)의 더욱 광범위한 접근법이 피하는 한계를 겪는다. 요컨대, 공공선택학파는 말한다, “정치가들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목표로 삼는, 불편부당한 공복들이 아니다. 그들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들이다.” 모든 사람의 지배적인 동기는 부(富)를 얻는 것이고, 이데올로기적 고려 대상들은 사소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현직자들은 왜 권력을 유지하기를 원하는가? 홀콤이 그 문제를 이해하는 바로는 주된 이유는 경제적 지대를 뜯어내는 것이다.

로스버드는, 비록 그가 또한 사람들의 경제적 자기 이익도 강조하지만, 사상에 의해 지배되는 것들에 훨씬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미국 독립 혁명을 일으켰는데, 부분적으로 그들이 독립 선언서에 표명된 이상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진정으로 공산주의를 믿었다. 그는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 10월 혁명을 시작하지 않았다. 물론 이 두 혁명도 역시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었다는 점은 진실이다.

이 주장에 대해 잘 알려져 있는 공공선택론 응답이 있는데, 고든 털럭의 ≪사회적 딜레마(The Social Dilemma)≫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혁명 행동은 공공재여서, 이데올로기적 혁명가들은 다른 혁명가들의 행동에 무임승차하기를 선호할 것이고, 따라서 자신에 대한 비용을 피할 것이다. 설사 이 분석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털럭과 기타 공공선택론 해설자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증명하는 것이 더 적다. 털럭은 표준적인 신고전학파 공공재 분석을 혁명들에 적용했지만,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표준적인 모형은 공공재가 효율적으로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것은 그 재화가 전혀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만약 털럭이 옳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들을 효율적인 양보다 더 적게 가질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은 우리가 그것들의 약간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정치적 자본주의의 유해한 효과들을 고려할 때, 홀콤은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당연히 궁금하게 여긴다. 그는 자기 책이 개선 조치보다는 주로 그 체제의 분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국가의 권력을 헌법적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말 제안한다. 그러한 한계들은 탐욕스런 정부를 방해하겠다는 어떤 약속을 지키게 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진보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은 기업 약탈을 제한하는 정부 조치를 지지했지만, 이것은 작동하지 않았다. “진보주의 이데올로기는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어떤 사람들에게 경제적 편익을 주기 위해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한다.”(p. 230) 홀콤의 제안들은 유리하고, 그는 ≪자유에서 민주주의로(From Liberty to Democracy)≫에서 이 주제에 관해 더 자세하게 통찰력 있고 박식하게 썼다.

정치적 자본주의에는 또 하나의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치적 자본주의가 새로운 경제 체제라는 홀콤의 중심 명제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미제스의 관점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중간적인 경제 체제는 없다. 미제스가 표명하듯이, “바로 그 생산 요소들에 관해서는 오직 사적 통제 아니면 공적 통제만 존재할 수 있다.”(≪인간 행동(Human Action)≫, 학자판, p. 712) 홀콤의 책에서 분석된 종류의 조치들은 자유 시장을 방해하지만, 그것들은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대안적인 방식이 되지 않는다. 만약 정치적 자본주의가 “제3의 체제(third system)”라면, 그것은 계산 문제(calculation problem)에 직면할 것이다. 경제 계산은 자유 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 자본주의는 본래적으로 자유 시장에 기생하는데, 이 점은 그것이[정치적 자본주의가] 끼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장애물이다. 그것의 나쁜 결과들을 고려하면, 그 점은 작은 위안이다.


글쓴이) David Gordon

데이비드 고든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위원이다.


Sooyoun Hwang (황수연) is a former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Kyumgsung University, Busan.

To read this article at MisesWire Korea, click here [1].

Korean
Author 1: 
David Gordon
Original Publish Date: 
April 27, 2019
Mises Published Date: 
April 27, 2019 - 9:45 AM
Social Media Image: 
Image: 
Political Capitalism by Randall Holcombe

Source URL: https://mises.org/node/47351

Links
[1] http://www.mises.kr/bbs/board.php?bo_table=theory&wr_id=291&page=1